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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백두대간 종주의 흔적들(1)

백두대간白頭大幹..남쪽의 지리산에서 북쪽 백두산에 이르는

인문지리학적 줄기를 칭하여 이르는 말..총 길이가 사천리가 넘고

험준한 준령과 고갯길..고대 한국의 역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또는

파묻혀 있더라도 그 흔적이 전설로 구전으로 남아 우리 한민족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비록 북녁의 그곳은 지금 지나지 못하지만

언제고 하나의 마루금으로 이어질 꿈과 희망과 간절함이 서려 있는 것..

 

 

나는 2009년 구조조정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2010년 이른 봄..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심정, 통풍과 궤양..그리고

심각한 무릎 부상의 후유증에 대한 스스로의 우려와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작은 도전과 이정표 수립..(현미/보리김치의 효능과 국선도의 양생효과)을

목표로 세우고 아직 잔설이 계곡 곳곳에 남아 있는 지리산 남쪽 자락 어천리에서

첫 발을 내 딛게 된다..

 

 

첫 코스치고는 처음부터 계속되는 가파른 된비알의 연속..북풍이 아직도 살갗을 스치는

날카로움이 예리했던 그 웅석봉 코스를 치고 올랐다..그 때나 지금이나 천천히 꾸준하게

내 페이스를 맞추어 오르다 보면 최선두는 아니더라도 선두그룹 언저리에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행능력을 갖추었으나 장시간의 오르막이나 내리막의 경우 무릎과 관절의 통증이

늘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아픔이었다..

 

 

내가 저 곳에 서면 1,100.7미터가 되는 셈이다..대간의 첫 봉우리 웅석봉..

정상석의 곰은 곰이라기 보다는 통통한 오소리 같이 귀여운 모습이다..

 

 

두번째 밤머리재에서 왕등재로 향하는 중간에 겨울의 잔향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리산 천왕봉의

우람한 자태와 마른 나뭇가지의 대비..지리산에 들 때..지리산을 볼 때..지리산은 지나칠 때

나는 가장 행복하였다..늘 그리운 어머니 같은 산..아마도 많은 산꾼에게 거의 비슷한 의미로

지리산은 가슴, 중단전을 품어내는 곳이다..

 

 

보호구역이라 산객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저런 습지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신비롭기도 하고 우리 산천이 가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에 저으기 놀라기도 한다..

 

 

벌써 삼년전의 모습이니..지금보다는 조금 더 젊고 팔팔(?)한 모습이다..

 

 

백두대간을 타면서 나는 우리 산과 강, 그리고 계곡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 의미뿐만 아니라 그 형상이 주는 신묘함에 흠뻑 빠져 들었고..저런 반상형태의

바위에서는 언젠가 입산수도하게 되면 기억해 두었다가 안거하면서 진하게 용맹정진하리라

다짐하면서 지나치기도 했다..

 

 

자연은 가끔씩은 사람의 손을 탄듯한 모습으로 산을 깍고 흩어 내리며

그냥 지나치면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 있는 저런 묘한 형상을 빚어 낸다..

 

 

겨울을 물리고 봄의 어깨를 밟으면서 질퍽거리는 흙길에서 계절의 순환과 성상의 변화..

그리고 인생사의 변화에 대한 남모를 자각의 순간도 맞이 했고..그것이 지금 나의

내공과 마음의 다짐에 적지 않은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맹춘孟春의 길목에서 철쭉은 피고 피어 힘든 산길을 한둥거리는 산객들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품어주고, 아스라한 아지랑이는 인생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범부의 마음을 투영해내는 것이니..

 

 

그래도 즐거움 가득 채워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경쾌함과

설레임을 한 다발 쏟아내곤 했다..

 

 

5월의 지리산, 비와 바람이 몰아치는 세석평전에서 정말로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생체험을 겪어도 보고..이 때 부터 비와의 사투가 서서히 막을 올린다..이 때 처럼 나의

몸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푸근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가혹한 지리산의 엄한

매질을 몸으로 맞아 본 기억이다..

 

 

날씨라도 좋으면 이렇게 출발전 단체사진을 찍고..중산리에서 기념촬영..이 때의 멤버가

결국 날머리에서는 네 그룹으로 쪼개지는 결코 잊지 못할 알바코스로 변화된다..

 

 

법계사에 들러 산신각에 절도 하고 보시도 하고 의기양양 하였으나..

 

 

천왕봉을 향해 굵은 땀을 떨어뜨리면서 올라가는 와중에 내려다 본 경치는

힘들게 땀 쏟는 자만이 가지는 특권중의 특권이다..

저 멀고 먼 산자락이 우리 한민족의 삶의 터전이요..정신적 버팀이요..

수 많은 싯구와 문학의 씨앗이 되어 살아 온 곳이다..

 

 

산행이라는 것은 단순한 오르내림의 반복이지만 그 Simplicity 속에서

얻어내는 미학..감동..그리고 심적 변화는 감히 정량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정성적인 아름다움이 곳곳에 편재하고 있다..

 

 

바람 없는 천왕봉..아마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지리산신이 특별히

이쁘게 보아주지 않는 이상..늘 지리의 최고봉 천왕봉에는 세찬 바람이 사람을 흔들면서

그 속에 자리한 조종적祖宗的 중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중봉을 거쳐 하봉으로 내려서는 길목..우뚝한 나무가 법신을 보호하는 사대천왕처럼

지나치는 산객의 겸허함과 숭산심崇山心을 요구한다..

 

 

전설의 고향의 한장면처럼 스멀스멀한 안개가 지리산 특유의 음기와

맞물려 묘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며 대간산꾼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결국 이 날, 나와 11명의 산객들은 통제구역인 국골계곡으로 내려서면서

생존본능에 의한 네시간여의 개척산행을 하게 된다..이 날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2:0으로 이겼다..대구에 도착하니 열두시 가까이 되었다..

 

 

지리산 구역은 세코스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형제봉으로 가는 길목의

싱그럽고 짙은 녹색의 숲이 산객의 허기진 가슴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선비샘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길목의 V자 계곡..글라이더를 타고 날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양정 마을 입구에 핀 도라지꽃 보라색 꽃이 그 신비함을 뽐낸다..

 

 

새벽까지 비가 내리고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의 코스..돼지평전 근처에서 바라본 운무군이

장쾌함과 색상의 대비와 함께 멋진 지리산 특유의 일망무제를 엮어낸다..

 

 

절대적 진리를 품고 있는 반야봉과 저 멀리 천왕봉이 한 여름의 풍성함을 더욱 뽐내고..

 

 

그렇게 지리의 품속에서 지리가 나를 희롱하는지 내가 지리를 애무하는지

산과 선인仙人의 사랑놀음은 너무 애닯지 않게 스토리를 이어가고..

 

 

다시 길을 뻗쳐 고리봉으로 짙은 안개를 뚫고 나아간다..안개는 시원함과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머리카락 끝 마디마디에 물방울을 맺고..감로수 처럼 산객의 피부에 Moisturizing을..^^

 

 

산객은 안개 속을 걸으며 늘 인생을 생각하며 비틀거리듯 내일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천진함으로 기다리는 심단心丹을 쌓아내었다..

 

 

한 치 앞이 아니라 반 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사람들은 늘 그것에 두려워하고 근거없는 공포를 가지고 자꾸만 남에게..또 절대자에게

기대어 심적인 안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내려 한다..

결국 자신이 이겨내고 헤쳐 나가야 할 것임에 다름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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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태양은 삶아 댈 듯이 작렬하고 뜨거워도 대간길을 걷는 산객들의

투지와 열망또한 못지 않게 강렬한 것이니..자연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

그 출발은 내가 마음을 먼저 내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에서부터이다..

 

 

대간길은 해발 1,905미터에서 이렇듯 삼백미터 미만의 구릉지까지 높고 낮음의 구분없이

변화무쌍하게 구불 구불 펼쳐진다..의병장의 기개를 기념하여 세워진 신의터재..역사의 자락이다.

 

 

운지버섯인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으나 대간길 구석구석에는 몸에 좋은 여러가지 약용버섯들이

눈 밝고 지식 넓은 산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곤 한다..나는 그냥 사진만 찍고 통과..

때로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의 굉음을 위로삼기도 하고..

 

 

사람마다 특색들이 유별나다..그냥 쌩하고 오로지 길을 타는데만 열중하시는 분..

두런 두런 파트너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밀렸던 대화의 시간으로 활용하시는분..

인생사 깊은 고민을 홀로 곱씹으며 내일과 미래를 준비하시는 분..지난 주 숱한

갈등과 애증의 관계에서 정리하고 풀어 헤치는 분..나처럼 의뭉스럽게 겉으로는

산천을 즐기면서 그 의미를 새기고 눈과 가슴과 머리에 담아 가는 이..다양하다..

 

 

다시 출발부터 비가 내린다..영취산도 젖고 정상석도 젖고 산객들의 마음도 젖는다..

 어찌보면 처량하나..이 대간길 산행이 인생의 여정과 별반 다른 것이 없구나..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거우며 때론 장관의 경치에 감탄하고..오늘처럼

비에 젖어 우중삼매의 경지에서 묵언 산행도 하고..

 

 

문득 백운산이 하도 외로워 힘들어 하기에 선인仙人의 입맞춤으로 달래주기도 하고..

 

 

속리산 전체를 조망하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오름길의 노고를 털어내기도 하고..

 

 

춥고 눈싸래기 내리는 젖은 암벽길을 진둥한둥 거리면서 오르고 미끄러지고..

 

 

나처럼 다리가 짧은 사람은 몇 번이고 아둥바둥 대면서 밧줄잡고 힘들게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온몸의 근육이 땡기고 힘을 쓰는 가파른 절벽 코스에서는 한숨을 쉬기도 한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험한 코스에서는 입술 깨물고 악바리처럼 올라야 겨우 한고비를 넘긴

안도감에 담배라도 한개피 물고 싶다..

 

 

때 이른 속리산의 겨울 눈싸래기에 처연한 심정으로 따끈한 돼지찌게에 소주라도

두어 잔 걸치고 싶은 생각 간절하여..오로지 그 일념으로 힘든 산행코스를 넘기곤 한다..

 

 

속리산 하면 대개 법주사와 문장대 정도만 생각하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이번 대간종주를 통해

속리산이 말 그대로 속세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 깊은 산인지를 직접 걸어보고 땀 흘려가면서

알게 되었다..옛날 청산선사께서 스승 청운도사님과 함께 처음으로 이동한 곳이 속리산으로

추정되는데 가히 천하도인들이 은거하면서 하늘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크고 장대하고 깊고 깊은 산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문장대와 함께 속리산의 양대 대척점에 우뚝 선 천왕봉..지리산 천왕봉보다야 낮지만 조망과

뿜어내는 기운..그리고 그 깊이감은 다른 여타 산에 가히 비할바가 아닌 멋진 곳이었다..

 

 

이제 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진입하는 계절을 변화를 겪으며 산객들의 대간종주는 계속된다..

갈령에서 천왕봉을 거쳐 문장대-화북분소로 하산하는 코스 출발전 단체사진..

 

 

남한의 대간코스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품코스이다..장쾌한 조망이 압권이다..

 

 

하늘은 늘 푸른 색으로 채색한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시원하게 하고

구름은 그것을 배경으로 쾌속으로 질주한다..

 

 

깊디 깊은 저 산군의 겹침..그냥 지나가기 너무 아까워 잠시 멍하니

그 속으로 나의 영혼을 실어 날려 본다..먹먹한 감동의 순간..

 

 

사방 조망 천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날은 맑은 날씨에

탁 트인 전망이 뭇 사나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표현..그자체..심산무언이다..

 

 

외국의 유명산들이 대개 하나의 높은 봉우리가 중심이 되어 흘러내린 산이라면

이 곳 속리산 자락과 주변의 산들..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의 산들은 아기자기

서로 엉키고 섥힌 정과 연줄의 이음이라 할 만 하다..

 

 

천왕봉에서 둘러 본 속리산 전체의 조망..멀리 왼쪽 중앙에 문장대가 보인다..

 

 

한마리 물개가 놀이하듯이 하늘을 향해 자신을 투사하고..시큼한 향내 가득한 하늘은

은은한 미소로 바위와 구름을 찬미한다..

 

 

역시 명불허전 속리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니 인생의 중요 갈림길에서 이렇게

전체를 조망하는 관력을 갖춘다면 뭇 많은 사람들을 보다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으리..

도인이나 목자..스님등 종교인이던 비종교인이던 갖추어야 할 우선 덕목이다..

 

 

일반 범부 청허는 그저 묵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인가..

 

 

아름답다..산하여..멋지도다 산군이여..즐기는 이 모두 이 천하절경에 감사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방법과 하심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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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빛을 바라보매 바윗등에 잠시 등기대고 바라보기 명상을 하는 것도 어찌 아니 좋을손가..

 

 

저 바위처럼 옹찬 심력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공간,시간대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은혜요..감사함이요..내가 살아가는 원력의 중심이 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이제 가을은 완전히 물러가고 살을 에이는 추위가 온 마디마디를 아릿하게

할퀴는 겨울..그래도 우리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내쉬는 숨 마다 응결되듯이 옷자락에 맺히고 영하 20도 가까운 맹추위에

비록 몸은 얼어 붙어도 마음은 이글 이글 타오르는 태양처럼 열망에 가득차 있다..

 

 

직지사를 품고 있는 황악산..원래 이름이 황학산이었는데 바위보다는 흙이 많아서

누런 학이 날개를 펼친 형상이라는 황학산이 더 정겹게 와 닿는다..

 

 

가파르게 고도를 500여미터 내리니 눈은 없지만 매서운 추위는 여전하고

옛날 전설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 여시골이다..

 

 

잠시라도 그냥 서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 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다음 산행을 기약하면서 화이팅~!!

 

 

아..이 곳은 겨울등반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대야산 코스..마지막 급경사 암벽구간은

대간꾼 들 사이에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다..하지만 대야산은 당당하다..

 

 

중간에 위치한 촛대봉까지는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으나..

 

 

가까이 갈수록 눈 앞에 현실적이고 긴급한 위험으로 다가오는 직벽구간..

 

 

눈은 깊이를 모를 정도로 쌓여 있고..

 

 

직벽 첫 구간에 밧줄을 타고 간신히 올랐으나 바위도 얼어붙고 밧줄도 얼어붙어

아이젠을 하고도 미끄러운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실제 낙상에 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도저히 안전상 너무 위험하여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 아쉬움 가득히..

 

 

불란치재에서 힘겨운 걸음을 내 딛는 산객들..

 

 

날씨도 찹고..몸도 차가우며..눈도 많고 경사는 가파르다..

 

 

나는 이 대야산 산행이후 개인적인 산행에서 허리 돌기뼈 두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두어달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된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조금만 움직여도 허리에 인두로 지지는듯한

통증이 두어달 계속되었고..무엇을 하기에도 용이 쓰이고

괴로운 시기였다..그래도 틈틈히 조금씩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나니

의사가 이야기한 시간보다 무려 한달 반이나 빠르게 다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다시 사월에 합류한 백두대간 종주 동료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간종주를 시작한지 벌써 일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봄이다..봄..

 

 

진달래 붉은 그 산길에는 여적 겨울이 미련을 두고 남았는가..

내 걸어내는 그 고부랑길 언저리에 둥근 바윗돌 그대로 남았는가..

입김 퍼지는 희뿌연 그리움에 내 등두드리던 친구 말소리 아직 남았는가..

 

 

무려 두 달 반만에 합류한 대간종주..힘을 내어 치달았다..

 

 

그리고 국수봉에는 국화향 가득 베여 있는듯 반갑게 베시시 웃는다..

 

 

찔레꽃은 늘상의 매력가득한 내음으로 지나가는 산객들 가슴을 흔들고..

 

 

구왕봉..희양산 코스에 반드시 거치는 은티마을..그 유래가 깊고도 성글다..

 

 

시원한 숲그늘에서 걸어 오르는 맛..적당한 근육의 땡김..약간 거친듯 통쾌하게 쉬어지는 숨결..

목덜미와 이마..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에 흐르듯 베여 나오는 땀..산행에서 내 몸이 좋아라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어쩌다 보니 여유넘치는 산행이 되어 봄날의 산행이 아주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온다..

 

 

희양산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봉암사 전경..청정도량으로 스님들의 용맹정진을 위해

일년에 한번 부처님 오신날에만 개방을 한다..사실 요즘 스님들이나 목사,신부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기행들이 많으나 대다수의 수행스님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결가부좌 수행을 하면서 내면과 절대적 진리를 찾고자 온 몸을 던져내고 있다..

 

 

희양산을 타는 맛은 적절한 암벽이 아주 다양하고도 앙증맞게 등산로에 배치되어 있어

기암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과 약간은 아찔한 고도감을 아주 잘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다.

 

 

2미터가 모자라 1천미터 산군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고 서러워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높이까지 치고 오르면서 빚어낸 그 절경이야말로 높이에

관계없는 그 산 고유의 절대적 가치이자 객관적 주체성이라 여겨진다..

 

 

앙증맞은 붉은 빛으로 바위와 산과 나무만의 적막함을 일거에 해소시키고

산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철쭉이 가히 화룡점정이다..

 

 

대간 마루금코스에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이 시루봉에서 보는 희양산과 구왕봉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웅장한 희양산의 모습이 듬직한 오랜 친구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획일적인 정상석이 다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성의를 보여준 것에

그저 감사할 뿐..백두대간은 어찌보면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일생에 꼭 한번은

완주해야 할 국민적 자산이자 유형적 보물이다..

 

 

부드럽기 그지 없는 산세를 보면서 속세의 시달림에 날카롭던 마음도 풀리고

푸르디 푸른 녹색의 싱그러움에 눈과 정신이 다 상쾌유쾌해진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올망 졸망 피어있는 야생화들에게서 또 다른 자연스러운

친근함과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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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비와의 사투가 시작된다..이화령에서부터 비가 내린다..온통 젖을 각오를 하고..

 

 

 

문경새재를 관통하는 코스에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백두대간중에 맞은 비를 그대로 받아 놓으면 동해가 출렁거릴 것 같다..^^

 

 

새들도 쉬어간다고 해서 새재..조령이라 한다..이곳의 산군들도 여느 산 못지 않게

고집이 있고 험준하여 산객들이 행여 쉬이 마음을 놓지 못한다..인생살이 원래

잘풀릴 때 더 긴장해야 하는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마역봉에서도 비는 내리고..촉촉히 젖은 대지와 산길에서

산객의 마음도 덩달아 우수에 젖기도 하고 애수에 젖은 추억을 더듬어 가기도 한다..

 

 

처음엔 작은 하나의 돌로 시작했던 것이 오고가는 산객들이 하나 둘 씩 마음을

보태니 제법 운치있는 돌탑이 되는 이치..세상살이 단박에 되는 것도 없고

혼자 힘으로 잘 풀리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함께 하는 세상..투명한 세상..

 

 

잠시 비가 걷히면 운무가 산등성이를 애무하듯 스치면서 솟아 오른다..

그 구름에 나의 근심걱정도 승화되어 날려 갈지니..

 

 

아주 멋들어지진 않지만 이 정상석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듬뿍 묻어난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이 있는 사람..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청허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아래 위 온통 비에 젖어도 고어텍스의 위력인가..속옷은 비 한방울 젖지 않는다..

그 옛날 이런 장비가 없었을 때에는 얼마나 춥고 찝찝했을까..새삼 그분들의

열정과 산에 대한 애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또 다시 한구간을 맞이하여 출발한다..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면 않는대로

다니면 다니는대로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이 꿈틀거리면서 살아 숨쉬는 곳..백두대간이다..

 

 

아주 아주 아름답다하여 이름붙여진 대미산..

커다란 눈썹처럼 유려하다 해서 그리 붙여져도 괜찮을듯 하다..

 

 

이 곳이 대간의 정중앙 지점이라 한다..이제 반환점을 돈 셈인데..산세는 갈수록 험해지고 길어진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안개는 자욱하니..그래도 산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스스로가 즐겨하기 때문일 것이다..내가 좋아서 하는데 힘들다고 인상을 쓸 수는 없는 법..

 

 

날씨는 습기를 가득 머금어 후텁지근하고 산행코스는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반복으로

육체적 기운을 쏙 빼놓는다..나의 얼굴표정도 많이 지쳐 있지만 뒷 분(전문산꾼)의

표정에 이 코스의 노곤함과 고됨이 여실히 묻어난다..

 

 

그래도 우리는 또 출발한다..그 것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온몸을 둘러 메친다 해도..

대간종주는 순간적인 힘을 요하는 곳이 아니고 꾸준한 인내..지구력..그리고

힘듦을 즐겨하는 낙천적 사고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황장산 가는 길에 천인절벽에서 바라 본 천주산과 공덕산의 오묘한 앙상블..

 

 

도락산의 현란한 외모도 감탄사를 섞어 폭탄주 들이키듯 감상하고..

 

 

맵시가 너무나도 고와 마치 새색시 치맛자락처럼 유연하고 부드럽다..

 

 

적절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만 항상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구간의 연속이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몰입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을 갖추어야 실수나

실패를 면할 수 있고 사전 연구와 마음의 준비..실제 비상시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마련해 둬야 낭패를 막을 수 있다..어찌 이리 똑 같을까..

 

 

그 산에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산과 내가 함께 공유하는 교차점을 찾고..

 

 

거대한 용의 등줄기처럼 웅장한 산자락의 용틀임에 탄복하고..

멀리 영봉의 위용에 지나온 곳과 앞으로 가야할 거리를 가늠하면서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산에서 어렴픗이라도 사람의 형상을 찾아내는 일은 즐거움이 배가되고..

그 이미지에 담긴 산세와 산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은 아주 오묘한 희열감을 주는

취미생활이 된다..영봉의 이미지는 개구쟁이 할아버지의 인상이다..

 

 

함께 하는 동료..남녀의 차이가 분명 있겠으나 사심이나 분별심보다는 보호본능과

상대방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예의..서로간의 믿음도 아주 중요하다..

이 인연이 보통 인연이겠는가..불교의 인연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수학적으로도 매우 희박한 확율로 서로 이렇게 마주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사가 소중하고 매순간이 귀중한 것이며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만나고 함께 하는 자체를 감사하고 하늘의 크나 큰 배려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친하지 않더라도 함께 카메라 앵글에 들어가는 그 자체가 백겁의 인연을 건너 뛰는 것이니..

 

 

또 비가 내린다..통과의례처럼 비가 내려도 이제는 산행중 더위를 식혀주는

좋은 파트너요..산신들께서 우리들에게 주는 작은 배려라 생각하니 오히려 더 반갑다..

 

 

어지간한 비는 그냥 맞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고 갑갑한 우의를 걸치는 것 보다

산행에 더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촛대봉이라는 이름도 대간길에 제법 된다..

 

 

구름 걷히면 청산이거늘..청산선사의 게송이 주는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자연의 변화에서 내 마음의 변화를 읽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초연함을 기르다 보면..

 

 

때로는 허물로 때로는 기쁨으로 나와 우리의 인생길에 오늘 내디디며 걸었던

걸음에서 느끼고 보았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그 반복을 통해 우리는 나와 세상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을 자꾸만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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